SERANG WORLD


안녕하세요? 김세랑입니다.

담담하게 즉흥적으로 쓴 글에 이렇게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인형제작을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이나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그리고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원형사들을 만나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후배 원형사들을 만나며 항상 아쉬운 것이 우리나라 모형계에는 흔히 말하는 '족보'가 서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거칠게 말해 '족보'라 표현했지만, 이것은 비록 짧지만 우리나라 모형계, 그중에서도 피겨 모델링의 간략한 역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줄기에서 나와 꽃이되고 열매가 되었는지를 모른다면 그 꽃이 아무리 화려하고 열매가 달다해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뿐입니다.

비록 거칠고 제 개인적인 경험치에서 풀어내는 글이지만 이 글이 인형을 사랑하고 즐기는 분들께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념정리2 - 초간단 인형의 역사>

인류역사 최초의 인형은 자연재료인 진흙으로 만든 소조상으로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소조상의 시초로 보는 구석기 시대의 '묄렌도르프의 비너스'나 동양의 무덤에 부장되는 '토용'으로부터 인형의 역사는 시작되지요.

이후 인류가 직조(천을 만드는 것)기술을 터득한뒤 헝겁인형이 만들어지고 금속도구가 발달하며 목각인형, 조각상등이 나옵니다.


중세시대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인형이 발달하는데, 도자기 제작기법으로 구워만든 비스크 인형이나 마리오네트등이 발달하고 이후 구체관절인형도 등장하죠.

동양에서는 주로 목각인형이 주류를 이룹니다.


근대에는 정밀도가 높아진 실사풍의 '스테츄'인 주석인형(납 합금으로 만들어진 금속인형)이 인기를 끕니다.(서양 동화인 '장난감 인형'에 나오는 나폴레옹 시대 군인 인형이 대표적이죠)


현대에 들어서 12인치 액션피겨의 원형은 '바비 인형'과 'G.I. Joe'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PVC와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며 이루어진 변화죠.

공장에서 금형으로 대량생산이 이뤄지는 점도 피겨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합니다.


1990년대 후반, 홍콩의 드래곤사(군인 인형)와 미국의 블루박스 토이(군인 인형), 사이드쇼(영화, 만화등 캐릭터 인형)등의 회사들이 앞다투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12인치 크기의 관절을 가진 액션피겨들을 쏟아내며 피겨 붐을 일으켰고, 결국 오늘날의 12인치 피겨 시장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제2장 - 태동기: 피겨 삼총사>

본격적으로 '피겨 삼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가야 겠네요.

전 당시 대전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지방도시들과는 경제, 문화적으로 큰 격차가 있죠.

서울에서는 1990년대 초에 이미 모형 전문점이란 것도 있었고 값비싼 외제 수입 모형재료나 제품들도 전시되고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지방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가 일체 없었습니다.

저 역시 학교앞 문방구에서 구입한 프라모델들을 조립하며 상자에 나와있는 제작예 사진과 설명서의 내용이 가장 큰 모형정보 채널이었으며, 당시 학생잡지인 소년중앙, 새소년, 학생과학등에 간혹 등장하는 프라모델 관련 기사(대부분 일본 모형잡지에서 무단 발췌한 카피기사)는 바이블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형제작에 관한 정보는 전무해서 사실상 완전한 독학으로 인형을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찰흙으로 만들어 포스터 컬러로 색칠한뒤 니스를 발라 마감해서 작품을 만들었고, 훗날 지점토를 이용해 만들다가 폴리퍼티를 깎아 만들고 요즘 나오는 모형용과는 비교도 안되는 초록색 공업용 에폭시 퍼티(수도관 누수 응급처치용)를 사용해 힘겹게 인형을 만드는데에 이르렀죠.

낮에는 미술대학 학생으로 수업을 듣고, 밤에는 모형을 만들며 잡지 필진 생활, 방학이면 서울 잡지사로 올라가 준직원으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이중, 삼중생활을 하며 전 급속도로 재료들과 모형기법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운명적이었던건지 별 생각없이 '남들은 모형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하는 호기심에 동네 문방구 앞에 붙어있던 프라모델 콘테스트 공지 포스터를 보고 혼자서 만들던 작품을 들고 콘테스트에 출품한 것이 덜컥 수상을 하게되며 시작된 모형잡지 생활은 관련정보에 굶주려있던 제게 별천지나 다름없었죠.

잡지사라는 특성상 소장되어 있던 모형관련 해외 자료 서적과 잡지등을 미친듯이 읽고 공부하고 실습해보며 꿈을 키워나갑니다.

"전공인 미술과 모형기술을 접목시켜서 언젠가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리라."


제1장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대중앞에 공표된 제가 만든 제1호 인형은 SF장르의 인형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는 인형장르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 피겨, 그중에서도 미소녀 피겨였죠.

그러나 일본만화 형식의 미소녀 인형들은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독자들이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거나 훗날 먹고살기 위해 의뢰작으로 들어온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만든 몇번을 제외하고는 전 캐릭터 인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이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 취향의 차이일 뿐입니다. 오해없으시길.)

제 관심의 대상은 밀리터리 인형과 전통 역사속의 인물들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잡지를 통해 계속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있던 무렵, 또다른 인형 작가들의 존재를 알게됩니다.

당시 붐이었던 캐릭터 인형시장을 노리고 사업을 시작한 국내 신생 개라지 인형 브랜드 'Sol Model'에서 오리지널 아이템 개발을 위해 채용한 원형사 '조일형'씨가 선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됩니다.

주로 캐릭터 인형을 만들지만 실사풍의 조형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이는 선수다라는 소문이었는데, 정작 그 사람을 안다거나 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베일에 쌓인 얼굴없는 고수' 같은 이미지였죠.


또다른 한명, 어린 친구인데 조형능력이 상당해서 프라모델 메이커인 아카데미의 인형을 전담해서 만드는 직원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자체개발 인형 프라모델이 없던 아카데미에서 탱크나 비행기에 슬금슬금 못보던 인형이 포함되기 시작하던 무렵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박기갑'이라 합니다.


제가 있던 사당동(호비스트 출판사)과 솔 모형이 있던 마포, 아카데미 과학이 있던 수유리를 연결하는 트라이앵글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만나봐야 겠다...' 제 머리속에 든 생각입니다.


두 사람에게 무작정 전화를 하고 신분을 밝힌뒤 어찌어찌 이야기를 나누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회합(?)을 가지기로 합니다.

강호의 무림고수 세명이 한데 모이는 이 역사적인 자리.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울지는... 않았습니다! 

그런건 무협지에서나 나오지~ 하하핫!


조일형씨, 부스스한 더벅머리에 순진하고 맘씨좋은 옆집 형 같아 보이는 얼굴, 말이 거의 없지만 입을 열면 수줍고 짧은 단문으로 마무리되는... 그리고 그 크고 길며 투박한 손은 도저히 저 손에서 곱디고운 미소녀 얼굴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박기갑씨, 저보다 연배는 아래인데 거의 삭발에 가깝게 짧게 자른 머리와 검은 피부, 주렁주렁 몸에 두른 액세서리들이 인형을 만든다기 보다는 홍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것 같은 인상입니다.

잠시 어색한 순간이 지나가고 슬쩍 서로의 스펙과 내공을 견주는 은근한 힘겨루기가 이어집니다.

사용하는 재료는 뭔지,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는 누군지, 만들고 싶은건 뭔지등...

어색함은 잠깐이고 반가움은 큽니다.

마이너한 장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이내 셋은 봉인된 혀를 쉴새없이 내두르며 이야기를 토해냅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인형 이야기와 경험담들을 토해놓은뒤 세사람은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듯 강력한 삼각편대를 이루기로 뜻을 함께 합니다.


매주 한번씩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재료와 기법을 공유하고 작품을 만들어 기사로 발표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인형을 대중화 시켜보자.

실제로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시로 만났고, 에폭시 퍼티와 스컬피라는 새로운 재료의 사용법과 특성을 공유하며 외국에서 발표된 새로운 인형작품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잡지에 다양한 기사로 발표되었죠.


스컬피라는 신재료를 사용해 환타지 장르의 창작인형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조일형씨,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작업할때는 성격이 꼼꼼해서 다작은 못하지만 한 작품 나올때마다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인 박기갑군,

그리고 잡지사 전문필진으로 매달 한작품 이상씩은 반드시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한달에 탱크 하나, 비행기 한대, 인형 하나를 색칠해 매달 기사로 발표한 나.


이후로 수년간 말 그대로 미친듯이 작품을 만들고 공부하고 배우며 즐기던 시간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은 변치않아 서로 각자의 관심과 방향을 잡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 시기이기도 하죠.

조일형씨는 캐릭터 인형 전문 원형사로, 박기갑씨는 잠시 다녔던 아카데미 과학을 나와서 프리랜서 원형사로, 저는 잡지사 필진을 하며 점차 역사적인 소재의 인물들을 인형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는 식으로 발전하게 된겁니다.


당시 이 세 사람의 기사는 탱크와 비행기외에는 관심이 없었거나 인형에 관심이 있더라도 관련정보가 부족해 답답하던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자극이 되었습니다.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던 인형을 좋아하거나 만들고 싶어 하던 이들이 호흡을 시작해서 물위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인형기사를 실으면 '아까운 한정된 지면에 인형따위를 싣지 말고 탱크나 비행기 기사를 하나라도 더 내보내라!'라고 하던 독자들도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져 인형의 매력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분위기입니다.


바야흐로 한국 모형계에서 완벽한 비주류였던 인형분야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계속-


세랑.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0 AND COMMENT 6
  1. stargazer 2012/01/03 18:35 address edit/delete reply

    당시 매달 사모으던 취미가에서 기다리는 기사 중 하나가 세랑님의 역사인물기행이었습니다. 연재가 길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기억도 나네요. 많이 만들지는 못했지만 인형 제작이나 페인팅에 대한 기사들을 볼 떄가 다른 전차나 비행기 관련 기사 보다 반가웠던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3 19:35 address edit/delete

      역사인물기행 이후에도 연재물 '비천'이나 단품들로 역사소재의 인형은 계속 연재했었죠.

  2. 전영기 2012/01/05 00:04 address edit/delete reply

    헉...예전에 "오~! 대박!! 이런걸 어떻게 만들었지??"라고 감탄했던 작품들이...;;
    뭔가 소름끼치네요~^^;

  3. 김뿌리 2012/01/06 19:50 address edit/delete reply

    전 지금도 취미가를 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들어 쓰던 그떄의작품들이 절대 쉽게 보아지지를 않습니다,,,
    세분의 많은 작품들은 지금봐도 수작이십니다,,
    지금이야 다들대가로 인정받으시니 옛작품들이 대가들의 과거를 보는 기회라 더반가운게 사실이겠지요,,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7 13:31 address edit/delete

      김뿌리님, 반갑습니다.
      멋진 베이스를 만드시는 뿌리베이스의 그분 맞으시죠?
      조만간 저도 만드신 베이스 이용할 일이 있을듯...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robotmin32 BlogIcon 이상민 2012/01/07 22:12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하세요.
    과거 취미가 지면으로만 봤던 반가운 이름이네요.
    부족한 실력으로 원형을 만들고 있지만... 이런 근원적인 뿌리(?)에
    대해서 소홀했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럽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d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 김세랑입니다.

평소 이런저런 생각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최근 몇차례의 전시나 관계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든 생각 하나가있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피겨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고가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애호가 분들도 피겨의 역사나 그 발전과정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 드문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 훌륭한 한국인 원형사들이 주요 메이커에서 활약하고 있는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현실이 있기까지 과연 우리나라 피겨계, 더 나아가 우리나라 모형계는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정도는 알고 즐긴다면 이 취미와 한국인 아티스트 분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싹트지 않겠습니까?

자고로 뿌리가 깊어야 잎과 꽃이 무성한 법이니까요^^


해서, 누군가가 나서서 정리를 한번 해주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러기엔 피겨 아티스트 제1세대중의 한명이고 지난 십수년 동안 모형잡지를 만들며 관련업계와 인물들을 고루 잘 알고 있는 제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의 지식과 경험치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기에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이길 지향하며 우리나라 모형계와 피겨의 발달 비화들을 한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담과 관계도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므로 종종 예기치 못한 '깔때기'(지자랑- 요즘 유행이죠? ^^)가 수시로 등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 자랑한다고 욕하지 마시고 그저 재미로 생각해 주세요^^

가능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갈 예정이며, 틈이 날때마다 조금씩 써나가는 연재형식으로 전개해 보겠습니다.


<기초 개념 정리 - 피겨란 무엇인가?>

피겨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Model'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Model은 '모형'을 뜻합니다.

모형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형상을 본딴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즐기는 피겨도 바로 이 모형의 하위개념입니다.

피겨(Figure)는 일반적으로 인물상(인형)을 말하는데, 즉 '사람의 형상을 본따 만든 모형'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미술의 영역으로 알고 있는 등신대(실물크기) 조각상이나 손톱만한 초미니 인형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즐기는 12인치 피겨는 1/6스케일로 축소되어 만들어진 12인치(약 30센티미터) 크기의 미니어처 피겨(Miniature Figure - 축소 인형)라고 해야 정확한 표기가 됩니다.


액션 피겨(Action Figure)는 인형의 구조와 방식에 대한 개념으로 관절이 들어가 있어 액션(움직임, 동작)을 즐길 수 있는 인형이란 뜻입니다.(반대 개념으로는 일반적인 조각상을 뜻하는 '스테츄'가 있죠)


<제1장: 태초에 그들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격동의 80년대가 마악 지나간 1991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모형전문 잡지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취미가(Hobbist)'라는 다소 생소하고도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제호의 이 잡지는 그러나 취미 모형분야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던 전국 방방곡곡의 모형인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잡지가 창간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모형시장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동네마다, 학교앞마다 있던 학용품등을 파는 '문방구'라는 곳은 학용품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의 사진으로 만들어진 책받침같은 연예정보와 프라모델로 대표되는 모형및 완구점을 겸하고 전자오락실이자 불량식품의 온상이기도 했죠.

아, 물론 이때는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인터넷이라는 것은 꿈도 못꾸던... 아날로그의 시절입니다.

이 잡지의 등장으로 비로소 전국에 모형전문점이나 모형동호회가 결성되는 붐을 일으키게 되죠.

훗날 여기에 더해 몇년후에는 비로소 PC통신(전화선 모뎀을 사용하는 인터넷의 전단계)이란 것이 등장하며 전국의 모형동호인들의 결속은 더욱 빨라집니다. 


저는 이 잡지가 창간되기 한해 전에 당시 국내 유일의 전국 규모 모형 콘테스트이던 '아카데미 프라모델 콘테스트'에 참가해 대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1991년에도 또다시 대상을 수상해 2년 연속 대상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되죠.(아~ 욕들이 쏟아지는 것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깔때기입니다 깔때기!)

제가 왜 욕먹을 것이 뻔한 이 이야기를 하냐하면, 바로 이 수상경력이 바탕이 되어서 취미가라는 모형잡지에 작품을 만들어 싣고 제작기사를 작성하는 '전문 필진'이 되기 때문이죠.

당시 제 나이 갓 20세, 마침내 모형을 만들어 밥을 먹고 사는 파란만장한 '프로 모델러'로써의 제 경력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당시 미술대학 신입생이던 저는 모형잡지일을 하면서 탱크, 비행기, 로봇, 인형등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만들어 댑니다.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었죠.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인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탱크 프라모델을 사도 탱크 자체보다는 거기에 들어있는 작은 인형을 더 좋아했죠.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모델러들은 인형을 '탱크의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할뿐 그리 진지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형은 완전히 비주류였죠.

그나마 약간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시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드래곤 볼의 손오공이나 오, 나의 여신님의 벨던디같은 캐릭터 인형들이 일부 마니아 층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그나마도 정품이 아닌 조악한 레진이나 소프트비닐제 카피키트가 고작이었습니다.


취미가의 필진이 되고 몇달후, 당시 인기장르인 SF붐을 타고 드디어 공식적인 제 첫번째 인형작품을 만들어 잡지에 소개하니 그 이름도 거창한 '사이버 맨'입니다.

뭐 설명해도 모를 나름의 창작 캐릭터로 한쪽 팔이 기계로 된 '사이보그(인조인간)'를 만든 겁니다.

지금보면 참혹한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나름 주목은 받았습니다.

일단 인형이란걸 직접 손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기였으니까요.

요즘은 스컬피나 에폭시 퍼티같은 좋은 재료들이 있지만, 당시에는 이런 재료조차도 없던 때입니다.

해서 공업용 '폴리퍼티'라는 것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이게 뭐냐하면 차 사고나서 살짝 찌그러지면 누런 반죽같은걸 바르고 사포질 한 다음에 색칠을 하지 않습니까?

그때 사용하는 누런 반죽이 바로 폴리퍼티입니다.

엄청나게 딱딱하고 가공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해로운 재료지요.


폴리퍼티는 스컬피나 에폭시 퍼티처럼 반죽을 해서 빚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아닙니다.

주제와 경화제를 섞으면 걸쭉한 액체상태가 되는데, 이걸 적절한 용기에 넣어 큰 덩어리로 굳히고 난뒤에 칼로 깎아서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죠.

즉, 손으로 형태를 빚어서 만드는 '조형'이 아니라 형태를 깎아 들어가는 '조각'용 재료입니다.

이 커다랗고 딱딱한 덩어리를 연필깎듯이 깍아서 밤톨만한 얼굴을 조각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어휴~~~

사포질은 어찌나 힘겨운지 연마용 전동공구를 이용해 갈아내려고 표면을 박박 갈아내다가 작업실에 가득찬 분진에 질식해서 기절을 한 적도 있습니다.(이건 비유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진짜 기절을 했어요!)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해 낸 이 인형... 운명적인 걸까요?

당시에는 12인치 액션피겨라는 장르가 제대로 자리잡기 전인데 당시 만든 사이버맨이 바로 12인치 사이즈의 스테츄였죠.

이 작품을 계기로 비슷한 컨셉이지만 크기가 120mm급으로 작아진 자작인형이 등장하는 '난 널 절대 잊지 못할꺼야'라는 디오라마 작품도 연이어 만들게 됩니다.

덕분에 전 지면을 통해 전국적으로 작품과 이름을 알린 '제1호 인형제작자'가 됩니다.

물론 저 이전에도 인형을 만드는 분은 암암리에 많이 계셨겠지만 어쨌든 '공식'이잖아요. ^0^

 

단행본 '메카닉 인터뷰'(김세랑 저서, 호비스트 발행, 1994)에 수록된 작품들. 김세랑(우측)1991년 작 'Cyberman'. 30Cm. 폴리에스터 퍼티 조각후 색칠. (좌측) 1991년 작 '난 널 절대 잊지 못할꺼야'. 30Cm X 40Cm 디오라마, 120mm급 인형.


또, 이 작품이 계기가 되어 이제 본격적으로 언급할 또다른 두명의 인형제작자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날 켈베로스 프로젝트라는 팀명으로 더 잘 알려진 캐릭터 인형계의 독보적인 선수 '조일형'씨와 알게모르게 12인치의 대중화에 일조한 원형사 '박기갑'씨.  

저와 더불어 1990년대 초반부터 인형을 사랑하고 인형을 만들어 먹고 살고 싶으며 인형 제작자가 대접받는 모형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들.

훗날 '인형계의 삼총사'로 불리우게 될 세 사람의 만남과 활약은 다음 기회에...


-세랑- 

P.S.; 지나친 깔때기에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시원한 냉수로 속을 좀 달래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0 AND COMMENT 11
  1. 여명시 2012/01/02 01:23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이피규어를 통해 잘 읽었습니다. ^^ 역시나 12인치 피규어에 관심을 둔 콜렉터로써 읽기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말로만 콜렉터일뿐, 말씀하신 바와같이 피규어의 역사나 발전과정을 알지 못하였었는데.. 김세랑님의 글을 통해 피규어의 대한 견문을 넓힐수 있겠네요.

    다음화도 기대가 됩니다.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3 19:29 address edit/delete

      그냥 생각 난 김에 써내려간 글인데 어찌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보려고요.

  2. stargazer 2012/01/02 11:37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제가 처음 본 세랑님 작품은 인형은 아니지만 처움 샀던 취미가 28호에 실렸던 이족보행 자작 메카닉이었죠. 초등학생 때였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이... 그 후 과월호로 '난 널 절대 잊지 못할거야'를 접하고 인형도 정말 놀랐지만 스크래치 빌드하신 메카닉이나 담배자판기가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 후 취미가 네오를 통해 세랑님 작품을 보며 십대 이십대가 지났네요. 앞으로 연재될 거 생각하니 두근두근 합니다.^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3 19:33 address edit/delete

      아, 아머스 스토리로 제 작품을 처음 접하셨던 모양이네요.
      디오라마 작품이었던 '난 절 절대 잊지 못할꺼야'의 디테일도 아주 정확히 기억하시네요^^

  3. 전영기 2012/01/02 12:28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아이피규어에서 읽고 다시 블로그와서 또 읽었습니다만,

    역시 이런이야기들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진정 좋은것같습니다.^^
    제가 알고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저때 저는 한창 반다이의 HG,MG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2부도 기대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3 19:34 address edit/delete

      2부 올라왔습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kh1019 BlogIcon 민규홍 2012/01/03 00:56 address edit/delete reply

    취미가라면 제가 초등학교 때 한참 발간되던 잡지네요.. ㅠ
    2부가 정말 기대됩니다.. 모형에대한 기반이 전무하던 시절을
    글로 읽을 수 있다니.. 저흰 참 편한 시대에 살고있단 생각이 듭니다.

    한주가량 용인 송담대학 부스관련으로 서울인형전에서 부스 관람을 자주 하다보니 오늘 결국 톰 헹크스 헤드를 구매했네요.ㅎㅎ
    볼수록 멋진 작품입니다! 이번 서울인형전 부스에서 처음 뵈었을때(지난 여름의 하비페어에서 강인애 교수님 옆에 있었습니다만..) 가르쳐주신대로 저도 잘 살아남고 견디며 조형하겠습니다.ㅎ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3 19:35 address edit/delete

      아, 제게 톰행크스 사간 안경 쓴 친구군요.
      말 듣고 보니 예전에 하비페어에서 본 기억도 되살아났습니다.
      반가왔어요^^

  5. 정의립 2012/01/05 19:01 address edit/delete reply

    오 세랑님이 직접 정리하시는 인형사라 흥미롭습니다. 내용중 본인도 기억 못하시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 알려 드립니다. 순서상으로는 난 너를 절대 잊지 못할거야 디오라마가 먼저고..주인공만 따로 만드셨다는게 싸이버 맨일 겁니다..(하도 마르고 달토록 봤더니, 기억이 나는 군요. 그나저나 그당시에 부분만 공개하셨던 아머 스토리 만화 끝까지 보여 주실 생각 없으신지요..1화만 봤더니 이 나이되도록 끝이 궁급합니다 ^^;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5 23:29 address edit/delete

      아, 그랫었군요. 저도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
      아머 스토리는 개략적인 설정은 연재에 나갔었고, 사실 5.18 광주 이야기를 SF로 포장해 연재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당시로써는 너무 민감했나봐요^^

  6. thinkagain 2012/01/26 09:43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흥미롭네요.
    전 취미기 독자였습니다.
    잡지 관련 일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알려주심 재밌을거 같아요.
    너무 흥미로운 글인데 짧아서 아쉬위요
    조금만 길게 써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0 AND COMMENT 7
  1. 전영기 2012/01/01 21:04 address edit/delete reply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 박종암 2012/01/04 07:22 address edit/delete reply

    또 오랜만에 들어왔어요. 그동안 못 읽은 포스트를 집에 가서 쭉 읽어야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아참.. 기즈모도에 스티브 잡스 피규어 관련 기사가 올라왔어요. 혹 세랑님이 만드신게 아닌가 유심히 봤는데, 아닌거 같더라구요. 얼굴이 실제 사진 보다 더 넓은거 같고.. 세랑님 솜씨가 아닌거 같더라구요. 링크도 없고.. 한번 봐보세요.
    http://gizmodo.com/5872483/this-new-steve-jobs-action-figure-is-so-good-its-freaky

    대한민국 피규어 비사 잘 읽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4 12:26 address edit/delete

      안녕하세요 종암님?
      진짜 오래간만이죠^^
      링크 걸어주신 피겨는 중국의 DID사에서 나올예정인 제품이네요.
      그동안 나온 스티브 잡스 피겨중에는 가장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저도 만들까 생각은 했었지만, 역시 이렇게 기성 메이커에서 나올 것 같더라고요^^

  3. Favicon of http://plafan.egloos.com BlogIcon darthy 2012/01/05 04:52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세랑님 오랫만입니다. 저도 잡스 피겨를 보고 찾아왔네요 ^^; 세랑님 작품같아 보이진 않지만 혹시나 따로 만드신게 있을까 했거든요. 이번에 나온 잡스 피겨는 솔직히 약간은 실제인물과는 느낌입니다. 잡스보다는 잡스역할을 하는 닮은 배우랄까요. 아마도 실제인물의 느낌은 세랑님이 잘 살리시지 않을까 해서, 언젠가 만드시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부담드리고 급마무리... ^^; )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5 11:54 address edit/delete

      이번 DID사의 잡스는 그의 비공식(?) 전기인 iCons의 북커버 사진이 베이스가 되었죠.
      전 잡스를 만들려고 마음 먹었을때 맨 처음 떠오른 이미지가 1984 매킨토시를 발표하던때의 젊은 잡스였습니다.
      캐링 케이스에서 매킨토시를 꺼내고 자신만만하게 웃던 젊은 잡스.
      두번째로 떠오른 것은 그가 오랜방황을 끝내고 애플로 복귀하여 i시리즈를 발표하던 당시의 모습입니다.
      아이맥, 큐브, 그리고 아이팟을 발표하던 당시의 잡스는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고 있는 모습이었죠.
      뭐 어차피 당장은 제가 만든다해도 작품의 판매는 별로일 것 같습니다.
      진짜 애플빠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DID사의 제품 이미지를 좋아할테니 말이죠.

    • darthy 2012/01/06 07:44 address edit/delete

      젊은 잡스나 복귀 직후 잡스도 괜찮을것 같은데요? (아니면 아예 애플 창사 당시 잡스와 워즈? ) DiD잡스가 제일 잘나갈때라고 할수 있을테니 아무래도 인기는 가장 좋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애도와 존경의 반응이 있는걸 보면 어떤 잡스든(?) 판매는 잘 되리라고 봅니다. 다만 애플이 DID에도 법적대응으로 판매를 중단시키려는것으로 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고 하겠지만요. ^^

    • Favicon of http://www.serang.co.kr BlogIcon serang 2012/01/06 13:10 address edit/delete

      저의 예언.
      애플의 인아이콘스 소송(DID사의 위장회사) - DID는 인아이콘스와의 연계를 부정 - 제품은 계속 어딘가의 공장에서 생산 - 법정소송 진행및 행정조치 시행 - 그러나 인아이콘스 회사를 찾을 수 없음 - 계속 법정소송중 - 제품 시장 출시 - 애플 승소 - 그러나 인아이콘스 회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찾을 수 없고 DID사는 인아이콘스 회사와의 관련성 부인하고 종결.





블로그 이미지
by serang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31)
Who Is Serang (3)
Fine Art (16)
Miniature Art (223)
Wearable Art (21)
SerangCast (56)
Serang,s Life (209)
Motorcycle Diary (75)
Movie & Fun (73)
Candle War (41)
Mac Life (69)
Military (27)
Art Shop (13)
  • 547,966Total hit
  • 36Today hit
  • 230Yesterday 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