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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27
    당신은 태극기와 애국가와 함께 운적이 있나요? (12)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에 가볍게 술 한잔하면서 쓰라리게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60~70년대생들에게는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맹목적인 애국심 강요에 대한 반발심으로 잘 부르지도 않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는 살벌한 분위기의 아침조회에서 군대라도 들어간 것 처럼 치러내야 했던 기억들 때문에 태극기와 애국가는 한동안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그저 한 나라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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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창시절 목격한 6월항쟁은 태극기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매일 저녁 5시 30분이 되면 국기 하강식이 거행되며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애국가와 함께 국기를 찾아 경례를 해야했던 시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었고 조금은 귀찮기도 한 것이었지만 1987년 6월의 그것은 좀 달랐습니다.
여전히 곳곳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애국가와 펄럭이는 태극기는 여전했지만, 바로 그 5시 30분 국기 하강식에 맞춰 골목골목, 건물마다, 길을 가던 행인들이 일제히 차도로 뛰쳐나가 도심을 메워버리고 불렀던 애국가는 지루하고 따분한 애국가가 아닌 가슴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벅찬 느낌이었습니다.

부모님께는 숨겼지만, 저 역시 종종 그 대열에 합류해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도 매일 5시 30이 되면 가게 문을 닫고 대전역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최루탄 직사에 두개골 함몰상을 당해 즉사한 고 이한열씨의 사진은 저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미래를 바꿔놓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87년, 그때 불렀던 애국가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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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 당시 전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어렸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날 아침, 조회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나라에 큰 일이 났다."라고 말씀하시던 얼굴입니다.
남자선생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눈가에 눈물자국을 지우지도 못한채 들어오셔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그 일이 5.18이라는 것은 훨씬 뒤에 알게 됩니다.
대학에 다니며 소위 '교재'로 불리던 조악한 화질의 광주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내방송들의 영상이 아닌 외신기자, 외국 민간인들이 촬영한 영상의 모음이었던 그 테이프는 훗날 다양한 다큐프로에 자료로 쓰여 이젠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당시 제가 본 것은 방송용으로 시신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너무나 참혹해 공중파 방송에서는 삭제된 분량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원본영상이었습니다.
차량시위대의 행렬 맨 앞의 버스 위에서 상의를 벗어 던진채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던 한 청년... 결국 그분은 곧이어 이어진 발포로 인해 절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길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수많은 시신들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리어카에 옮겨지고 겨우 태극기 한장이 씌워질 뿐입니다.
시신의 피가 배어 붉게 변한 태극기, 그리고 거리에서, 버스위에서, 마지막 밤 도청안에서 울먹거리며 불렀던 애국가...
1980년 5월의 태극기는 잔인하게 붉은 핏빛이고 애국가는 처연한 슬픔이었습니다.

1991년 여름, 전 시청앞 로터리(현재의 시청광장)에 있었습니다.
남대문 시장을 등진채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길과 골목이 전경대의 제복과 방패로 인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지독히 비현실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듯한 일제발사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뒤이어 비행궤적을 따라 흰꼬리를 그리며 눈앞으로 날아드는 지랄탄...
귓볼을 스쳐 지나간 지랄탄이 제 뒤에 있던 순대행상 아주머니의 순대삶는 솥을 뒤엎어 놓는 순간 숨이 콱 막혀오며 그대로 길바닥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질식해버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최루가스속에서 아득하게 의식이 멀어질 즈음, 전 봤습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의 창가에서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던져서 펄럭이며 내려오는 한장의 태극기...
그 태극기로 인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1991년 여름, 최루가스 속에서 눈물 콧물을 쏟아가던 가운데 목격한 그 태극기는 '희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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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다시 돌아온 시청은 10년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도로를 메운 젊은이들, 함성, 그리고 태극기와 애국가...
붉은악마가 상암구장에서 해치워버린 거대한 태극기 퍼포먼스는 가슴떨리는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절절하게 와닿았던 것은 선두에서 응원을 리딩하는 분들이 온몸을 쥐어짜듯 토해내던 사전구호인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 입니다.
전 지금도 그 목소리와 모습을 떠올리면 온몸이 찌릿해집니다.
2002년과 2006년, 붉은물결 속의 태극기와 애국가는 짜릿한 전률로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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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더라통신 2007.01.27 16:19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이제 애국심을 강요하기보다는 애국심을 자발적으로 이끌어낼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 세랑 2007.01.31 03:31 address edit/delete

      우리나라에 한나라당만 사라져도 자못 애국심을 이끌어낼 나라가 될 수 있을겁니다 ㅋㅋㅋ

  2. 이한수 2007.01.29 10:33 address edit/delete reply

    518 기념 공원에 랩터 타고 한 번 방문해 주세요...

    그리고 오시게 된다면 예쁘게 꾸며진 신묘역 말고 구묘역 먼저 찾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구묘역엔 전두환씨가 모처에 왔다갔다며 새겨놓은 돌판이 있는데 이 것 꼭 지그시 밟아주시고요.

    • 세랑 2007.01.31 03:32 address edit/delete

      그렇지 않아도 지난 여름 전국일주때 광주에 랩터타고 가서 5.18 묘역 갔었습니다^^

  3. 쇠돌이 2007.01.30 11:51 address edit/delete reply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을 보면... 그리고 그때 권력에 빌붙어 살던 인간들이 아직도 득세하고 지지받고 하는 현실이 이해가 안갈뿐입니다.

    • 세랑 2007.01.31 03:35 address edit/delete

      동서고금, 시대를 불문하고 구태를 청산하지 못하면 결국 언젠가는 곪아 터지죠.
      우리나라의 IMF 경제위기가 지난 50여년간의 썪은 사회와 경제구조가 불러온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재벌구조와 불평등한 조세구조, 기득권층의 조세문제등은 하루빨리 바로 잡혀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마당에 전두환 기념공원이라니...
      전재산 30만원짜리 인물을 뭘 기념할게 있다고...

  4. 박상욱 2007.01.30 16:52 address edit/delete reply

    87년 기억나네요 제가 고3이고 누나가 1학년이었는데,,저녁에 누나가 집에 왔을때 매퀘한 냄새로
    어머니한테 혼났던적이있었습니다,,옷을 후다닥 모두빨고,,,,
    저는 몰랐죠,,,그날저녁 시청,서울역앞에 사람들로 가득했던것이 뉴스에 나왔습니다,,누나는 테레비젼옆에서 저에게만 몰래 말했죠
    오늘 저기에 갔었다고,,,아버지 어머니한테는 비밀이었습니다,,그후에 6.29선언이 나오더군요
    80년대학번이면 아마 누구나 익숙한 최루탄과 태극기인것같습니다,,,

    • 세랑 2007.01.31 03:36 address edit/delete

      최루탄과 태극기... 앞으로는 더이상 두 단어가 함께 붙어 다니는 일이 없었음 좋겠습니다.

  5. eastman 2007.02.01 23:26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냥 젊은 사람들은 역사의 무게는 이제 역사의 몫으로 넘겨주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80년대에 대학다닌 사람으로서 세상에 그렇게 열심히 추구해야할 게 정말 있을까 하는 회의가 많이 들어요.
    그냥 정직하게 돈벌고, 그렇게 돈벌면 많은 돈을 못벌겠지만 그 돈으로 자기 인생 소박하게 즐기고, 그리고 적은 돈에서 약간의 돈을 떼어내 남도 좀 도와주고 하면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이 가장 성공한 삶으로 생각이 된다는...
    슬퍼라, 세상산다는게.

    • 세랑 2007.02.02 00:08 address edit/delete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소박하게 자신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내가 혼자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그리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 바르고 잘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도 않는 것... 그런게 인생인가봐요.
      정말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인생을 알게될꺼라는 말이 맞는게 아닐지...

  6. 바둑이 2007.02.04 22:01 address edit/delete reply

    그 당시 광주에 살던 제 사촌은 친구와 육교를 건너는중 앞서 가던 친구가 그냥 픽 쓰러졌는데 ...그게 총맞고 죽은 거였데요...
    그당시 죽음을 이해하기엔 어린나이라 그렇게만 기억하고 있지만...기도 막히고 코도 막힌 일이지요...
    청와대 뒤에 살던 저는 상엄한 헌병들에게 둘러싸여져서 단단히 차단된 채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 세랑 2007.02.04 22:32 address edit/delete

      여전히 그 학살자들이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것이 차라리 비현실적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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