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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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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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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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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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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2.04
    잘 만들고 싶지 않다. 21
  8. 2008.01.04
    1/6 Scale 'Serang' - Smile Version. 2
  9. 2007.12.20
    닥터 하우스 헤드 색칠. 2

작년부터 숙원사업(?)이던 슈타이너 상사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잘생기지도, 멋있지도 않은 얼굴이지만 전 이 인상적인 얼굴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감동적인 전쟁영화의 걸작인 철십자 훈장의 슈타이너 상사를 재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얼마나 채워질런지는 모르겠으나, 전장에서 살아온 한 노병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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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DAK버전 톰과 함께 완성을 위해 마무리 작업중인 밀러 대위님.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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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제작을 마무리하면서 시작한 신작은 SPR(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밀러대위다.
언제나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옅은 썩소를 짓는 톰 행크스의 표정이 전쟁에 내몰린 학교 선생의 고뇌가 잘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극장에서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발키리의 톰 크루즈에 이어 또 '톰'이다.
또 '톰'으로 이어지는 인물 없나?(플래툰의 톰 베린저?)

어쨌든 미묘한 이 아저씨의 표정때문에 이 인형은 기본조형에 만 하루라는 놀라운 스피드로 기본조형을 마쳤지만, 현재 일주일 이상 미묘한 수정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상한 인물이다.
물론 다른 일 하는 짬짬이 하느라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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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색칠까지 끝낸 완성작이 등장했다.
모형을 만들고 색칠하는 것은 언제나 내 삶의 일부였는데, 작년 한해는 이놈의 쥐바기 가카때문에 손에 에나멜 뭍혀볼 여유가 없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닥치고 완성'을 목표로 달려본 슈타우펜베르크 피겨의 모습을 감상해 보시길...


안대는 별도 부품으로 만들어서 씌웠다 벗었다 할 수 있다.
안대 캡 부분은 레진으로 만들어진 조형품이고 끈은 얇은 인조가죽을 잘라 만들었다.

장비와 의상은 Toys City에서 나온 의상 루즈세트를 이용했다.
약간씩 부실한 색칠을 수정해주고 가죽으로 표현된 부분들에는 약간씩 웨더링과 질감을 강조하는 색칠을 했다. 
독일군 그레이트 코트는 드래곤 제품을 스카웃한 것.

얼굴 색칠은 붓으만 작업을 했다.
액션피겨용 공장도색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서프레싱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통 히스토릭 색칠법도 아닌, 그저 칠하고 싶은대로 해본 '내맘대로 색칠법'으로 마음것 즐겨봤다.
사용한 도료는 에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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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암살계획 작전의 핵심에 있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버그 대령은 영화 발키리에서 자신을 빼다박은 배우 톰 크루즈에 의해 완벽하게 복원된다.
아직은 미세한 수정이 필요하고 모자와 안대같은 소품이 더 만들어져야 하지만 일단 기본이 될 헤드 스컬핑이 끝났다.

영원한 꽃미남으로 기억되는 톰 크루즈도 이젠 50대의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젊은 날의 톰 보다는 약간 살집을 주고 잔주름도 넣었고 피부질감도 약간 푸석하게 했다.

장교정모와 안대를 한 카리스마 넘치는 슈타우펜버그 대령을 곧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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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훨씬 더 전, 아카데미 프라모델 콘테스트의 심사를 보러갔다가 내 눈에 쏙 들어온 두 고딩 형제들이 있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이 반짝반짝 빛나던 두 형제는 동생은 인형을 만들어 색칠하고, 형은 탱크와 배경을 만들어 작지만 멋진 디오라마를 출품했었다.
당시 이 친구들을 눈여겨 본 나는 곧바로 따로 연락해 잡지필진으로 데뷔시켰고, 그중 동생인 광렬이는 내 첫번째 모형제자가 되기도 했다.

수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형인 성렬군은 군대로, 동생은 호주로 이민을 가서 각각 다른 삶을 살았는데 실로 오랜만에 광렬이가 잠시 귀국을 해서 셋이 함께 만나게 되었다.
연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영락없는 형 노릇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성렬이는 항상 믿음직스럽고, 광렬이는 당시 내 심미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54mm 밀리터리 피겨 원형사로 활동중이다.  
셋이서 밤 늦도록 예전 추억과 모형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잊지않고 찾아준 성렬, 광렬 두 형제가 고맙고 반갑다.
그나저나 요놈들이 벌써 서른을 바라본다니... 내가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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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연극제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미술을 하게되고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데에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방학숙제로 만들었던, 찰흙을 빚어 만든 파도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를 보신 미술선생님이 '세랑이는 커서 화가나 조각가가 되면 좋겠구나'라는 그 한마디가 내 인생에 첫번째 전환점을 찍어준 것이다.

이전까지도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거나 잘 만들고자하는 노력따윈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일차원적인 욕구에 의해 만든 것이었고 내가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못그리는지에 대한 개념 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흙장난과 낙서하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미술'이란 두 글자를 각인시켜준 그날의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나의 목표이자 꿈은 연극과 영화를 향하고 있었다. 연기와 영상은 떠오르는 이미지에 가득차 있던 한 소년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희망이자 오롯한 외길처럼 보였다.



고3 여름방학, 또한번의 전환점이 찾아오게 된다.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던 내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미술'이란 두글자는 잊고 있었지만 여전히 만화그리기와 프라모델 만들기는 내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휴식이자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미술선생님의 권유로 나간 사생대회에서 입상하게된 것을 계기로 견학을 가게 된 한 미술대학의 서양화 실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난 새로운 전환점에 발을 들여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코 밝지 않은, 어찌보면 다소 음침하게 느껴지는 실내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세로로 길게 난 창을 통해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코를 톡 쏘는 테레핀유의 송진향과 키를 훌쩍 넘겨 벽면을 가득채운 약 200호 정도의 그림이 앞에 서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완벽하게 기억하지만 그 그림이 무엇이었는지는 불분명한데, 그게 어찌되었던간에 입시를 불과 두달반 정도 남긴 내 현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경험이었고 그 날 이후 난 미대입시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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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1학년 실기실에서 내 습작들과 함께.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양화 전공의 미대 1학년생인 나는 한 학기 동안 또 석고상을 그려야했다.
석고상 그리기는 분명 기초데셍력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었겠지만, 늦깎이 미대입시를 준비하느라 남들의 세배, 네배의 양으로 지겹게 해댄 석고덩어리 그리기는 정말 재미없었다.
너무나 지겨웠고 고지식한 교수진의 방식에 대한 맹랑한 내 반항심은 석고상에 보이는 모든 명암을 반대로 바꿔그리기로 나타났다.
어두운 곳은 밝게 그리고 밝은 곳은 어둡게 처리하는, 마치 사진의 네거티브 필름에 찍힌 것 처럼 말이다.
교수님께 불려가 혼쭐이 났지만 난 나대로 내 주장도 함께 말씀을 드렸다.

"잘 그리기는 쉽습니다. 잠자코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더욱 쉽습니다. 전 쉽게 잘 그리는 것 말고 좋은 작품을 그려내고 싶어서 미술대학에 왔습니다."

깐깐하고 무섭기로 소문났던 그 교수님의 표정이 일순 누그러지며 난 더이상 혼나지 않아도 되었고 덤으로 그 수업을 마칠 즈음 좋은 성적까지 받게 되었다.


1990년 취미가 창간 이후, 난 십수년을 한결같이 모형을 만들어왔다.
모형잡지사의 필진으로 시작해서 직원으로, 그리고 편집장을 거치며 건담, 캐릭터 인형, 전차, 비행기, 함선, 밀리터리/ 히스토릭 인형을 모두 섭렵했고 단품, 비넷, 디오라마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댔다.
어떤 장르이건 머릿속에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기만 하면 그것을 만드는 시간은 새로운 도전이자 즐거운 행위였다.
미친듯이 모형을 만들었고 많을때는 한달에 1/48 비행기 한대에 1/16 빅스케일 전차와 인형까지 해치우곤 해서 이대영 전 편집장님께서는 날보고 모형을 풀빵찍듯 만들어 댄다면서 '모형공장'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서 모형제작은 단순히 그 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해보는 일이었고, 그것이 미치도록 즐겁고 재미있어서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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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 시절 모형색칠중

괴로왔다. 
모형을 만드는 시간이, 모형잡지를 만드는 시간이 지옥과도 같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다 내팽겨치고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을때 조차도 내 손은 쉬지않고 에폭시 퍼티 반죽을 주무르고 있거나 사포질을, 또는 붓을 잡고 인형의 얼굴을 색칠하고 있었다. 
10년을 넘게 직업으로 모형을 만들고 나니 머리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마치 정교한 기계와도 같이 탱크에 워싱을 하고 블랜딩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모형이나 이미지를 만들기 보다는 독자들이 보고싶어하는, 또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몸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고 오로지 완성만을 위한 한없이 지루한 과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매달 마감을 앞두고 착착 완성작을 뽑아내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기사를 만드는데 익숙해진 내 몸은 더이상 내것이 아니었고, 이미 나는 모형을 만드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진짜 '모형공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만성 목디스크로 인한 왼팔 마비증세까지 와버렸다.
팔에 힘이 빠지고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에 왼손으로 모형을 들고 있을 수 조차 없어서 탱크를 책상에 내려놓은채 엎드리다시피하고 오른손만으로 만들고 색칠을 해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잡지 마감시간은 칼 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으며 한달 한달을 버텨가던중 바로 그 날이 찾아왓다.
내가 더이상 나만의 생각과 이미지를 담은 '작품'이 아닌 '완성작'을 뽑아내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음을 통렬히 알아차린 그 날 이후로 난 더이상 이 일을 계속해나갈 힘을 잃고 말았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라던가 건강문제같은 표면적이고 현실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후로 지난 2년간 난 모형에 손도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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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이 싫어서가 아니라 더이상 습관처럼 모형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십수년을 지속한 습관은 무서운 것이어서 종종 미치도록 모형을 만들고 싶을때도 있었지만, 차라리 나는 모형이 아닌 옷을 만들어 입거나 그림을 그렸고, 더불어 바이크를 만들어 타고 여행을 다녔다.
의도적으로 모형을 멀리했고, 대신에 미술전시나 영화, 책을 보는 일이 많아졌으며 그저 혼자 바이크를 타고 이름모를 시골길을 달렸다.
모르는 사람들은 팔자좋게 유람을 다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십수년동안 나를 지배해오던 것들과 싸우는 일 이었고, 그것들을 털어버리는데 온 힘을 다해야만 했다.
마감이 지나면 모형잡지라는 이름으로 팔리게 될 '138페이지의 백지'에 무언가를 채워넣으려는 생각으로 꽉 차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머리속에 조금씩 새로운 생각들과 경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겨우겨우 나는 다시 모형 공구상자를 열 수 있었다. 
 
모형을 잘 만들기는 쉽다.
물론 모형을 잘 만들기위해서는 오랜시간과 경험, 그리고 각종 테크닉을 섭렵하고 그것을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기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노력'을 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다.
잘 만든다는 것은 '감성'보다는 '기능'의 문제이며 기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잘 만들기는 쉽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어렵다.

나는 잘 만든 작품보다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신기하고 정교하며 놀라운 작품보다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래서 내 작품을 보며 사람들이 '어떤 재료로 만들었나요? 도료는 어떤 것에 무슨 색을 쓴건가요?'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슬픈 인형을 만드셨나요?', '보고있으면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반드시 모형으로 불려지지 않아도 좋고 스케일이 맞지 않아도 좋으며 꼭 잘만들고 잘 색칠되어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내 머리속에 있는 이미지와 가슴속의 감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이면 좋겠다.
거창하게 스스로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아도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내 감성과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 진정한 예술이 될 것이다.

모형제작이란 것을 직업으로 삼은지 올해로 18년째, 난 또다시 새로운 전환점을 찍고 있다. 
당돌하고 거칠었으며 미숙했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좋은 작품을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20살 어느 여름날 그때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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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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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먼저 만들었던 제 자소상이 요즘의 제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보인다고 하는 분들이 계셔서 새로운 버전을 하나 더 만들어 봤습니다.
무표정인 지난번의 헤드와는 달리 이번엔 '스마일' 버전입니다.
손이 덜 풀린 상태에서 만들었던 먼저 헤드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더 닮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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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헤드는 완성후 이른바 '서프레싱'이라 불리는 리얼 페인팅으로 색칠해볼 예정이기 때문에 헤드를 조형하는 단계에서 피부의 땀구멍이나 수염자국을 표현해 봤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 색칠을 하게 되면 거의 실제 사람과 같은 피부질감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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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마르고 무표정이었던 첫번째 헤드와 함께 놓으니 아주 대조적이네요.
사실 제게는 이 양쪽 모두의 얼굴이 존재합니다.
바로 요즘 제 작업의 주제인 누구나 갖고 있는 '양면성'을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컷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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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하우스의 헤드 색칠이 끝났다.
내 미니미 색칠때와는 달리 하우스의 복잡한 내면 이미지를 표현해 보고 싶어서 전형적인 액션피겨의 색칠방식 대신에 그림을 그리듯 색칠하는 전통적인 히스토릭 피겨 색칠방식을 선택했다.
다소 거칠고 회화적으로 보여 '진짜 사람같은' 느낌은 떨어지지만, 보다 예술적이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느낌을 살릴 수가 있는 이런 방식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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