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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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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연속이다.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늪에서 허우적대고 허망한 세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워도 이놈의 고깃덩이는 자꾸만 내 발길을 잡아 끈다.
2006년 이후 또한번 내 목을 조르고 있는 이 굴레와 껍데기를 벗어 던지기위해 몸부림 치다가 껍데기 중의 하나를 날려버렸다.
거울보며 바리깡으로 벅벅 밀고 면도기로 싸악~싹 밀어버리고 며칠...
완전삭발을 한 것은 군입대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두상도 못생겼고 머리를 밀면 내 인상이 매우 살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남들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아웃오브안중.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바닥까지 빠져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젠 잘 알기에 오늘도 난 심신을 모두 망나니의 칼춤앞에 내던지고 있다.

AND

고증, 실증사학, 과학적 근거 다 좋다.

그런데 소위 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기계적인 시각과 자세에 있다.

수십, 수백, 수천년전의 일들을 자신이 본 텍스트들에만 의존하여 재단하고 유추하고 판단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있는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는 격이다.


역사를 들여다볼때는 기록을 바탕으로 하되 '당대의 사람이 되어 당대의 시각으로 모든 사건과 사물을 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잘난 박사님들이 되어서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거북배가 왜 물이 새는지, 왜 바다에서는 항해를 할 수 없는지에 대해 그 근본을 단 한번이라도 들여다 보았는지 묻고싶다.


일제시대에 바닷배가 아닌 강배들 자료를 바탕으로 모 박사님께서 '우리나라 배의 밑은 평평한 평저선이다'라고 단정지어 버린이후 단 한번도 그 이론과 논거를 실증해볼 생각조차 안하고 그대로 정설로 굳어져버린 이 웃지 못할 상황.

중국에서 발견된 고려선의 배밑이 첨저형과 평저형의 중간쯤되는 독특한 형태인 것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전통적인 방수 기술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면 그 '잃어버린 기술'을 찾아내고 복원라려는 노력은 안하고 물이 샐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일단 만들고 보는 이 저급함을 어찌할 것인가?

'현대의 기술로도 안되니 아마 그 옛날에도 물이 샜을 것이다. 아마 물을 수시로 퍼내며...'따위의 말을 어찌 지껄일 수 있는가!


매번 말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바보가 아니다.

배우고 익히고 활용하는 기술과 학문과 지식이 현대의 그것과 '다를뿐'이며 오히려 오늘날 박사님입네하고 으시대는 그대들은 넘볼 수 없는 광대한 지식을 섭렵하신 분들이다.


나는 비록 학술을 하는 당신들에 비해 배움은 짧을지 모르나 예술가로써, 그리고 민간 전통군사사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임진왜란 당시 통제사 어른의 마음으로, 그분의 시각으로, 당대의 군인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고 느끼려 노력했다는 점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두정갑의 둥근 고리의 정체를 증명하는 자료가 미비하다고 해서 그것을 생략해버리지 않았고,

동개의 자주색 띠를 없애버리지 않았으며,

'구군복은 갑옷의 속옷이다'라는 기록을 충실히 따랐으며,

정체불명의 개량활이나 습사용이 아닌 전투용 활을 찾아 재현했고,

재현의 어려움과 비용에 타협하지 않고 실제 옷감의 무늬를 그대로 따랐으며,

허리에 찬 전통환도가 왜소해보인다고 쓸데없이 큰 칼을 손에 들고 다니게 만들지 않았고,

두정의 볼록한 형태를 재현하기 어렵다고 똑딱이 단추를 단 허접한 디테일로 타협하지 않았으며, 

난데없이 조선시대 도깨비 장식에 신라귀면 얼굴을 갖다 붙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렇게도 보고싶었지만 볼 수 없던,

통제사 영감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자 이봉상 장군의 초상을 보고 또보고, 난중일기를 읽고 또 읽으며 '예술가로써의 내 상상력'으로 마침내 그분을 뵈었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뵌 통제사 영감'의 모습이고, 바로 이것이 학술과 예술의 차이다.

   

    

AND

명량, 333척의 적함들과 홀로 직접 맞서 싸우던 함대 기함인 천자1호좌선이 초요기를 올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안위를 부릅니다.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판옥선 장대에서 적선에 편전을 날려대던 장군께서 소리칩니다. 

"안위 이놈~! 도망치면 네가 살 것 같으냐! 내 당장 너를 군법에 따라 목을 벨 것이나 싸움이 급하니 먼저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내손에 죽으랴 아니면 적과 싸우다 죽을테냐!"

혼비백산한 안위는 333척의 적선을 향해 돌격합니다.

충무공은 분명 임금과 백성, 나라를 사랑했지만 결코 머리로만 싸우거나 마냥 인자한 덕장, 지장만은 아니었습니다.
원균과 진린의 뻘짓에 밤잠을 못이루고 고약하다, 망측하다, 괴이하다, 이불을 움켜쥐며 이를 박박 갈 정도로 화도 내셨습니다.
억울함과 분통함에 진지도 못드십니다.

당연합니다.
남은 목숨 내걸고 싸우고 있는 판국에 자기 배에서 기생질하고 후방에서 조수에 떠내려온 왜군 수급이나 뎅강뎅강 베어 챙기는 작자들에게 화가 안나면 이상하지요.

난중일기에서 충무공이 이런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은 결코 매력적이지 못했을겁니다.
나와 같은 사람,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조선의 늙은 군인'이었던 이순신이 난세에서 나라를 구해내는 엄청난 일을 만들어 냅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대단합니까?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부끄러운 아들이지만 전장에서는 분기탱천해 야차가 되어 버리는 인물.
크건 작건 잘못앞에서는 경상우수사 원균도 바지 까서 곤장 쳐버리고 내 수족같은 병사의 목도 뎅강 쳐 날려버리는 단호함.
통사께서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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