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을 코앞에 둔 지난주 목요일 밤, 세 남자가 모여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내가 말을 꺼냈다.
"우리 여행이나 갈까? 사천 박물관에 있다는 쎈츄리온이랑 T-34보러. 어때?"
평소 각자 일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모형제작이라는 공통점과 각기 살아가는 인생이야기를 하기 좋아해서 뜻이 맞던 우리는 내 뜬금없는 말에 일제히 눈을 반짝이며 쳐다본다.
"갈까?" - 나.
"가지 뭐." - J씨.(전 A모형사 근무. 현재 의류업을 하며 중국 광저우 거주중)
"좋다, 가자!" - S씨.(영상/음반업계 종사자)
다음날인 금요일 저녁, 우리는 번잡한 여행준비나 계획도 없이 그저 몸만 밴 한대에 싣고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경남 사천시 KAI-한국 항공 산업(주) 사옥 옆에 위치한 항공우주 박물관은 1990년대 말에 생긴 신생 박물관으로 과거 여의도 안보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던 전시물의 일부와 자체적으로 마련한 전시물이 합쳐져 생겨난 군사관련 박물관으로, 전반적인 전시물의 수준은 미미하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전시물 몇점이 포함되어 있어 전문가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관심을 끄는 장소다.
이른 아침부터 세명의 시커먼 사내들이 박물관 앞에 나타나자 매점 아주머니가 신기한듯 물어온다.
"여기 박물관 보러 왔쓰예?"
내려오며 우리끼리 했던 "아마 서울에서 사천까지 탱크 한대 보러 내려가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을꺼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질문이 아닌가.
세 남자의 삼일간 남해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삼청동에서 가을은 달력속의 날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북악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는 나무들은 물론이고 가로수인 은행나무는 살짜기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어김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거리의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오래된 기와지붕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너무나 정겹게 어우러진다.
아울러 집집마다 조그맣게 가꾸어 놓은 화분이나 화단의 꽃들도 가을 정취를 더하는 재치꾸러기들이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 이 담벼락에 액자가 설치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사연과 마음이 담긴 낙서에 포인트를 심는 액자 하나만으로 이 낙서들은 모두 미술품이자 그림이 되어버린다.
거리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멋진 전시는 평소 이곳을 오가며 생각에 그쳤던 내 평소 구상과 바램을 실천에 옮겨주었다는 점에서 전시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매콤하고 달콤한 닭볶음탕 생각이 나기도 하고 말이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양재를 벗어나 성남방향으로 달리다가 문득 이와같은 일을 예전에도 겪은 듯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다녀온뒤 확인을 해보니 정확히 1년전에 완벽하게 같은 과정과 이유, 코스로 남한산성을 다녀온 일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일부러 계획을 잡은 것은 아닌데 놀랍게도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과정으로 같은 장소를 찾는 제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날고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손오공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확히 1년전 밤에 사진을 찍었던 그 장소입니다.
수백년을 버틴 산성의 성벽은 그옛날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의 치욕을 뒤로한채 굳건히 서있습니다.
활활타는 단풍잎이 마치 넘실대는 불꽃처럼 보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의 색은 그림을 그리는 절 절망케 만듭니다.
이제 단풍이 저물고 나면 코끝이 시린 겨울이 다가오겠죠.

이번에는 낮이라서 같은 장소이지만 느낌이 다르네요.

왠지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순도 100%의 원색들을 칠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황홀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무신론자인 저 조차도 하늘님의 예술적 감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절묘하고도 놀라운 색채의 향연에 눈앞이 아득해 집니다.

겨울은 내게 또 어떤 얼굴로 찾아올지, 어떤 풍경과 어떤 생각을 던져주게 될지 은근한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