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숙...
학창 시절, '삼포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보곤 어딘가 모를 신비한 분위기의 여주인공에 신경이 쓰인 적이 있었다.
요즘 처럼 인터넷도 없던 시절, '문 숙'이란 이름 두 글자만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배우의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오늘, 인터넷에서 그녀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내 안의 상처가 이제야 진주가 됐다”
내.안.의.상.처.가.이.제.야.진.주.가.됐.다.
상처가,
진주가 되었다.
아아...
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가.
기사를 읽다가 이 말 한마디에 온몸이 전율하듯 찌릿찌릿했다.
사랑한 자의, 겪은 자의, 바닥을 짚어 본 사람의,
그 숱한 고통의 시간을 살아 본 사람의 이 한마디는 단순하고도 명쾌하며 본질을 꿰뚫는 힘을 가졌다.
그녀의 나이 스무살 남짓.
마흔세살의 이혼남이었던 이만희 감독의 영화 '태양을 닮은 소녀'에 캐스팅되어 감독과 처음 만난 순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그녀는 교외의 백양나무 숲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미친듯이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은 겨우 1년.
지병이 있음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만희 감독은 "아무래도 네게서 아주 멀리 떠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곤 피를 토하며 1975년,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말해서 무엇할까?
인기절정의 순간 찾아 온 이 사건으로 그녀는 한국을 떠나 구도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폭풍과도 같은 방황의 시간을 거쳐 다다른 마우이 섬에서 그녀는 화가이자 요가, 명상을 하는 구도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받은 햇볕만큼 그을린 얼굴과 자연처럼 물드는 흰 머리카락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녀는, 더이상 꽃다운 연예인이나 여인이 아닌 '인간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더이상 신화도,
더이상의 환상도,
그리고 꿈마저 꾸지 못하는 현대인...
컴퓨터 게임 공간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깊은 기억 속의 꿈을 슬그머니 끄집어내는 현실.
신화가,
환상이,
꿈은 살아 숨쉬는 것.
화석이 되어버린 이 거대한 뼈대가
나의 녹슨 꿈을 부활시킨다..
2007. 09. Sketch. 미니어처 작업후 2m X 8m 대형 조형물로 완성예정.


그는 친절하다.
언제나 밝은 미소와 몸에 밴 친절로 누구에게나 행복한 만족감을 주는 '그'.
이웃 사무실의 미스 조를 보고 예의 사람좋아보이는 함박웃음을 짓던 그의 입술이 씰룩이더니,
이내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훌러덩 뒤집어지며 탈피하는 '그'.
밝은 미소를 짓게하던 입주위의 근육이,
써클렌즈를 낀 듯 반짝이던 그의 눈이,
복날에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리곤 뻘겋게 녹이 슨 골격이 드러난다.
아름답다.
치장하지 않은,
장식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름답다.
골격은 여전히 튼튼하다.
젤라틴 처럼 녹아버린 근육이 없어도 그의 뼈대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한다.
결제서류의 사본을 만들고 커피 한모금을 홀짝이자
커피가 그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려 발밑에 고인다.
"똑똑~!" 옆 사무실의 미스 조다.
'그'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2007. 09. Sketch. 미니어처 제작후 등신대로 조형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