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출토된 고구려 갑옷 유물들, 가야지역 출토유물, 동북아시아 유목민들의 투구등을 참고했으며, 그동안 개인적으로 연구하며 가능한 고구려 고분 벽화와 실제 유물에서 드러난 모습을 최우선 적으로 고려해 제작했다.
일단 고구려의 투구유물은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이 거의 없다.
철편의 결합방식에 따라 혁철(가죽끈으로 연결)방식과 정철(쇠못으로 고정)방식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두가지 방식을 섞어서 표현해 보고 싶다.
아직은 세부 디테일이 덜 들어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형태를 볼 수 있으므로 올려본다.
때문에 고분벽화를 가장 많이 참고해야 하며, 이 그림들과 실제 유물, 동시기의 가야나 신라, 백제 유물과 비교하며 그 형태를 역으로 유추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투구는 길다란 철편을 이어 연결하고 투구 끝에 관모형 금동장식이 부착된 '관모형 종장판 정철주'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관모형 장식이 부착되는 경우는 그 신분이 높고 위엄을 세우기 위한 장식이므로 태왕의 경우 당연히 관모장식을 붙이는 것이 당연할 것 같다.
특히 이번 제작의 핵심은 '고구려 투구에 달린 뿔'의 재해석이다.
개인적으로 고분벽화들을 분석해보건데, 뿔이 달린 투구의 존재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림에서 뿔처럼 묘사된 부분들은 대부분 이번 제작에서 처럼 날개를 형상화한 측면 장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고구려를 전후한 시대의 주변국 유물들이나 이미 실물이 출토된 관모형 복발의 날개장식등에서 확인이 된다.

난 이미 광개토태왕을 인형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취미가라는 잡지에 '김세랑의 역사인물기행'이라는 코너를 연재하며 그 첫회가 바로 광개토태왕이었고, 이후 내가 '역사적인 인물'들을 인형으로 재현하는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매달리게 한 시발점이었다.
당시에 만든 인형은 지금보자면 창피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라서 소개하진 않겠지만, 당시에 비해 조형의 테크닉과 고증작업이 훨씬 나아진 지금 만든 이 인형과 당시의 인형은 놀랄만큼 흡사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제작한 헤드는 고구려 시대의 전형적인 관모인 '절풍(또는 조우관)'과 투구를 쓴 모습 두가지를 모두 재현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어설픈 사극의 말도안되는 이른바 '퓨전 의상'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 그동안 출토된 유물들과 연구자료들을 토대로 제대로 고증된 광개토태왕의 모습을 재현해보고 싶은 야무진 욕심을 부려볼까 한다,
투구는 제왕의 권위를 더욱 돋보이게 할 '관모형 복발주'를 기본으로 만들 예정이며, 지금 머리에 쓰고 있는 절풍은 '바람을 가른다'는 듯을 가진 모자로 고구려인들의 상징과도 같은 모자였다.
상투위에 가볍게 올려 끈으로 고정해 쓰는 삼각 꼬깔모자인 절풍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고구려인들이 즐겼으며, 다만 그 재질과 장식에만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철저히 현장과 실생활 중심의 군주였던 태왕에게는 치렁치렁하고 불편한 금관보다는 금동장식이 입혀진 절풍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머리모양 역시 고증을 따라 반상투식의 헤어스타일로 만들었는데, 관모와 투구를 쓰기위한 머리모양이기도 하다.
당초 이마에는 두건을 두른 것을 표현했었지만, 역시 '고구려인 하면 절풍'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만든 것을 싹 밀어내고 다시 제작했다.
절풍에는 나중에 꿩의 깃털 장식을 양쪽에 꽂은 것을 재현해 추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차갑지만은 않은...
냉철하고 앞을 내다보는 눈.
강인하지만...
한 시대를 꿈꾸는 인물.
바로 그런 한 인물을 표현해보고 싶어서 만들어본 헤드.
18세에 제왕의 자리에 올라 36세에 요절한 위대한 제왕의 완성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