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일년은 내게 있어서 가장 힘든 시간이자 가장 외로운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그 일년을 보내는 동안 과연 돌아오는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봤지만, 결국 돌아온 해답은 먼저 세상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진리'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지를 깨닫는데 그쳤다.
'사는 것은 그저 사는 것이다.'
안간힘을 낸 들, 악다구니를 써가며 돈을 모은 들 결국 사람은 살아가는 형태가 다를뿐 그저 한세상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하루하루 소중히 써야 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한 마지막 하루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생이 끝나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 "내게 단 하루만이라도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하는 간절한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덜하기 위해서라도 내게 주어진 남은 날들을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의한 진주만 침공후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2세들로 구성되고 한국인이 부대장을 맡았던 미군내의 전설적인 전투부대 442nd RCT, 이른바 '니세이 부대'는 미국인들이 보내는 의혹의 눈길 속에서 자신들이 미국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군말없이 전장의 선봉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건 전쟁에 익숙해서도, 살기위해서도, 미국이 좋아서도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었다.
그런 그들의 부대 모토이며 구호가 바로 "Go For Broke!"다.
이 몸이 부서질때까지... 전진...
"죽을 힘을 다하라!"
이젠 내 삶의 구호이자 모토가 된다.


서편제의 후속편격이라 할 수 있는 천년학은 송화와 동호의 관계와 소리를 찾아가는 소리꾼의 처연한 인생이 깊게 새겨져있는 영화다.
삼청동을 둘러보고 난 뒤 대한극장에 가서 천년학의 마지막회를 봤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이 내가 그중 젊은 축에 속했고 대부분 중년 이상의 어른들 몇분만이 극장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십수년전에 서편제를 개봉날 마지막회를 봤었는데, 그날의 극장 풍경도 이와 같았다.
영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정일성 촬영감독의 유장하고 아름다운 화면과 임권택 감독 특유의 질박하면서도 무뚝뚝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분명 영화는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스토리와 배경에 대한 설명에 인색하고 관객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흔히 '따분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0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 노감독은 화려한 화면구성과 연출보다는 그 연륜이 느껴지는 은근한 뚝심을 선보인다.
송화의 소리를 벗삼아 세상을 떠나는 노인의 죽음을 하늘로 비상하는 벗꽃잎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못할 장면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