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대는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거리이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약간의 일탈이 인정되는 서울에서 몇 안되는 곳.
그중의 으뜸이 바로 홍대다.
옆사람이 벌거벗고 다니던,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건,
놀이터에서는 힙합과 비보잉이 펼쳐지고,
바로 그 옆에서는 '노킹 온 해븐스 도어'가 울려퍼지는 곳.
그곳이 홍대다.
그런 홍대에 사람들의 구호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친구가 말을 한다.
"홍대는 자유의 상징이고 지금 노킹 온 해븐스 도어가 울려퍼지고 있는데,
바로 저 노래가 베트남전을 거치며 반전, 평화를 노래한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란 걸 아는 젊은이들이 여기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나는 노킹 온 해븐스 도어의 일부분을 흥얼거린다.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엄마, 내 총을 땅에 내려놔요
I can't shoot them anymore
난 더이상 그들을 쏠 수 없어요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g down
긴 검은 구름이 오고 있어요
I feel I'm knocking on heaven's door...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느낌이야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느낌으로 내 발을 한 걸음씩 내딛는다.
어느새 내 팔뚝은 어깨위로 올라가고 폐부에서 올라오는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진다.
"사랑도~명예도~이름도~남김없이. 투쟁~! 투쟁~!!"


창살 안의 시계는 창살 밖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흘러간다.
때문에 창살 안에 갇히면 참을 수 없는 단절감과 절망을 체험하게 된다.
눅눅한 공기, 습기가 올라오는 비닐장판, 음식이 들고 나가는 식구멍과 눅눅한 모포...
감방안은 권력과 법이란 이름아래 한 인간의 권리와 인권이 '합법적'으로 제한을 당하는 장소인 것이다.
난 이 창살의 안쪽에 있어본 것이 두번째다.
한번은 군에서, 한번은...
안에 있으면, 그 느린 시간속에서 자연스럽게 회상과 명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나의 지난 날과 잡념들 사이를 헤엄치다가 한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고맙다.
그동안 나를 얽매던 다양한 잡념들을 날려줘서.
이제는 머리가 맑다.
20살, 바로 그때의 명쾌함을 다시 선물해준 이 나라의 공권력과 쥐박이에게 감사의 축배를!


밤새 비가 온다.
이제는 더이상 시원한 단비가 아니라 서늘함 마저 느껴지는 여름의 끝자락을 알리는 비다.
이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흘린 땀방울은 이내 증발했고,
목놓아 외친 내 함성은 건물들 사이로 메아리 쳐갔다.
그리고 숱하게 쏟아낸 눈물은 이제 마를법도 하건만...
내 가슴속에는 아직도 노엽고, 슬프고, 원통함이 남아있나보다.
빗방울은 한방울씩 하늘에서 떨어지지만,
그 한방울 한방울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마침내 바다를 만들어 낸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저 빗방울처럼
우리의 목소리와 울분과 의지가 세상속으로 퍼져나가길...

유리창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분노와 눈물들이 숱하게 매달려 있다.



우리의 봉숙이... KBS 정문 계단에 오랜만에 앉아본다.
시대를 역행해 방송장악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3주만에 가본 KBS는 오랜만에 평온한 분위기.
물론 길 건너편에는 사복을 입은 정보과 짭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는 했지만... 82쿡에서 전해준 파이도 먹고, 다인아빠의 팥빙수도 처음 먹어 봤다.
매일같이 투쟁의 현장에 있지만, 역할이 역할인지라 그동안 한번도 다인아빠와 82쿡 아주머니들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는데 왠지 그 음식들을 먹으며 목이 메어온다.
원래 난 KBS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땡전, 땡노, 땡김뉴스로 이어지는 지난 부패정권하에서의 KBS는 '정권의 시녀'에 다름아니었기에 언제부터인가 '뉴스는 MBC'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겨우 방송독립성이 정착되려고 하는 시점에 터져나온 명바귀의 방송장악 음모는 역겹기까지 하다.
그 역겨움과 이 정권의 생지랄에 계단에 앉아 KBS의 지난 투쟁역사 영상을 보며 흘러나온 '민주언론 쟁취가'를 따라부르는 내 모습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바라본 내 옆에 앉은 사람, 동지의 손에 들린 촛불이 너무나 아름다와 보인다.
"당신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입니다."


최악이다.
석달간 지속된 거대한 국민들의 외침에 청맹과니처럼 눈과 귀를 모두 막아버린 이 오만한 정부에 슬슬 지쳐가고 있다.
거대한 여론의 용광로로 불린 아고라에도 알바들과 자조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두달째 계속되고 있는 가투는 가뜩이나 지친 정신과 함께 육체적으로도 한계점을 향하게 한다.
피곤한가?
짜증이 나나?
우리의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 느끼는가?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희망의 꿈을 꾼다.
몇시간만 있으면 오늘이 될 8월 15일.
100번째 촛불이 켜지는 날.
아울러 갑호비상령이 떨어지고 정권의 개들에 의해 인간사냥을 예고한 날.
이 지독한 절망의 순간에 나는 희망의 꿈을 꾼다.
100번째 촛불이 켜지고 나면 거리 곳곳에 등장할 100만, 아니 천만의 양심들을 기대한다.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마치 20년전의 6월 10일 그날처럼 목에 태극기를 두르고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을 꿈꾼다.
이땅의 양심이,
이땅의 민주주의가,
이땅의 행동하는 지성이...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펼쳐보이고 싶다.
전대협의 깃발아래서 대오를 안전하게 이끌고 구호를 리딩하던 사람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가투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투는 우리들의 생각과 결심을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승리를 가져오게 될 가장 빠른 길은 '더 많은 촛불들을 만들어 내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광복절의 투쟁은 이런 우리 스스로의 현재를 확인하는 날이 될 것이다.
흥분하지도, 절망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확인하자.
절망적이라면 까짓 눈물 쓰윽 훔쳐내고 다시 뛰자!
감격스럽다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일을 준비하자!
우리가 승리하는 길은 거리에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역사는 민중의 힘과 위대한 승리들을 증명하고 있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우리 국민들을, 그리고 자랑스러운 촛불들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의 꿈을 꾼다.

미친소 수입으로 뻘짓을 하더니 급기야 친일파 매국노 집단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명바귀의 야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내용으로 일제에 대한 항일투쟁 기간을 이 나라의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건국60주년이라며 '건국절'을 추진하고 있는 명바귀와 한나라당, 뉴라이트 연합은 그 태생적인 뿌리가 친일파에 있는 관계로 항일 독립투쟁을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지워내고 싶은 것이다.
참, 지랄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누가뭐래도 올해는 단기 4341년, 광복 63주년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내용으로 일제에 대한 항일투쟁 기간을 이 나라의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건국60주년이라며 '건국절'을 추진하고 있는 명바귀와 한나라당, 뉴라이트 연합은 그 태생적인 뿌리가 친일파에 있는 관계로 항일 독립투쟁을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지워내고 싶은 것이다.
참, 지랄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누가뭐래도 올해는 단기 4341년, 광복 63주년이다!!





옆 사람을 바라봅니다.
소통이란 상대가 말할때 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눈빛을 통해 교감을 합니다.
설령 그의 뜻이 나와 다를지라도
일단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으로부터 소통은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그 놈'에게 분노하는 것은,
소통을 하겠다며 우리를 쳐다보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눈빛을 읽으려 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쇠고기... 좋습니다. 지들끼리 많이 먹으라 그래요.
우린 안먹으면 그만입니다.
방송장악... 하세요. 지들끼리 보라고 해요.
우린 안보면 그만입니다.
조중동... 계속 미친놈들 처럼 지껄이라 그래요.
우린 캐무시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놈'은 아웃시켜야 합니다.
소통을 거부하는 그 놈은...
보기싫다고 안보는 것 만으로는 끝이 나질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경훈이형 블로그에서~)
지난 29일은 내 생일,
30일은 멋진 경훈이 형님의 생일이었다.
두 예술인의 무박2일 생일파뤼에 등장한 사람들...
위대한 음악가인 경훈이형, 코드가 잘 통한 웨스트몬트님, 역시 음악하는 베더, 영상일 하는 율리, 잠시 다녀간 멧슨형, 시각디자이너 스니핏... 모두들 오래간만이라 반가왔습니다.


작업실 담벼락에 심은 해바라기가 무럭무럭 자라더니 드디어 꽃을 피웠다.
해바라기는 어릴적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중의 하나다.
해.바.라.기.
해를 바라보기.
해를 바라기(원하기).
해를 바라는 이.
정확히 그 어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양을 닮은 이 꽃은 마치 땅에서 뜨는 작은 태양같다.
사람 처럼 보이기도 하고
해를 바라보며 그 따스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는,
해바라기야 말로 가장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꽃이 아닐까?


개봉을 앞둔 님은 먼 곳에의 홈페이지 가보니 크레딧이 올라왔다.
프리 프로덕션에만 참가하고 정작 프로덕션 과정은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내 자문내용이 얼마나 구현되었을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
뭐 어차피 군의상이랑 미술에 '전쟁영화'로써의 고증에 별 신경 안썼을 것이라는 점을 알기에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사실.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는데...
근데 당연한 관례인 VIP/스텝 시사회 연락을 안해주는 것은 뭥미?
이럴때가 영화쪽 일 하기 젤 싫어질때다.
쳇~ 삐짐. (-_-;)


그 구하기 어렵다는 간짬뽕 무더기로 득템!
아... 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가?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조차도 그 환상의 맛을 한번 맛보겠다고 동네의 단골마트 아저씨와 아줌마를 돌아가며 괴롭힌(?) 끝에 쟁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아자씨, 왜 낭심 라면들은 종류별로 다 있는데 삼양꺼는 딸랑 오리지널 쇠고기 라면과 맛있는 라면 두개 뿐이에요?"
"아줌씨, 요즘 누가 낭심 먹는다고 매대에 죄다 낭심뿐인건가요? 삼양 것 좀 갖다놓으세요. 요새 삼양먹기운동하는거 모르시나? 이게 뭥미?"
오늘 일주일만에 마트에 다시 가보니 떠억하니 매대를 차지한 간짬뽕.
있는대로 다 긁어 왔는데, 혹 우리집 주변에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급 죄송해지는 시츄에이숀~
결제할때는 살포시 알흠다운 사인메시지 하나 남겨주는 센스 발휘해 주시고~

나오면서 마트 아줌씨 자극해주는 멘트로 마무리.
"아~ 담에 올땐 삼양 황태 라면이랑 바지락 칼국수 라면도 구해주면 좋겠네. 국물이 기가 막히다던데~!!"

7월 5일 집회도중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
원문 주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7321.html
“우리가 먼저 변했으니 정부도…”
‘7・5문화제’ 시청앞에서 만난 사람들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촛불 끝까지 타오를것”
“국민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미래는 밝다”
지난 5일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시 태평로 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온라인 카페 깃발 아래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 20년 전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노땅’ 깃발 아래 모인 직장인 등으로 넘실댔다.
“우리가 먼저 변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변할 때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부의 대답을 요구했다. 다시 한번의 기회를 줬으니 변화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촛불도 계속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면 단추를 빼고 바로잡는게 맞다.”
서강석(55)씨는 이명박 정부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옷을 고쳐 입으려면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든지 단추를 빼고 다시 채워야 한다는 건 아이들도 아는 일인데 이명박 정부만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씨는 “이제는 들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주민(18・고등학교3)군은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때문에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들의 목소리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질긴 놈이 이기는 겁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촛불은 될 때까지 타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동원(48)씨는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촛불은 끝까지 타오를 것”이라며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선거에서 국민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고 밝혔다.
아이 셋의 손을 잡고 나온 복대성(41)씨는 “촛불집회가 끝날 기약은 없다.
국민들은 많은 기회를 주었고 이명박 정부는 신임을 잃었지만 국민 대다수가 믿어 보자고 한다면 따르겠다”며 “다만 정부의 태도가 조금도 바뀌지 않으면 임기 내내 시민들이 정부를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김세랑(37)씨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인터넷에 다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로그인을 못 해 못 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며 “정부가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상실하면 우리가 촛불을 들어서라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용화(45)씨는 “앞으로도 우리의 요구 사항을 정부가 어디까지 들어주고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 문제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대운하, 공공사업 민영화 등 모든 문제에 이렇게 촛불을 들어 모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어떻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람들
■ “평화로운 촛불을” 이날 시민들은 평화 집회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서강석씨는 “어렵게 만든 자리다. 폭력 시위를 통해 우리의 순수성과 정당성이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오랜 기간 집회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비폭력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운동권이었다는 이용화(45)씨는 “폭력 시위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시기와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한다”며 “촛불집회는 21세기형이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몸부림을 폭력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동원씨는 “시민들의 과격한 행동을 굳이 폭력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몸부림’이라고 봐야 한다”며 “언로가 막혔을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몸부림을 보지 못하면 그 정부는 외눈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폭력 시위를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처절한 몸부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촛불로 많은 것 배웠다” 이날 촛불집회는 승리의 애드벌룬을 띄우는 퍼포먼스로 끝을 맺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들은 국민이 승리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세랑(37)씨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한 이상 변화를 이루기 전엔 촛불을 내리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국민이 승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동원씨는 “프랑스 국민들도 끊임없는 저항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의 우파 정책을 막아 왔다”며 “대한민국 국민 역시 한마음으로 계속 움직이면 분명히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향후 방향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시민들을 촛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복대성(41)씨는 “국민들은 촛불을 계기로 보수 언론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했다”며 “국민은 변했고 앞으로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윤(31)씨는 “촛불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모든 사람이 조금씩 움직인다면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원문 주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7321.html
“우리가 먼저 변했으니 정부도…”
‘7・5문화제’ 시청앞에서 만난 사람들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촛불 끝까지 타오를것”
“국민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미래는 밝다”
지난 5일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시 태평로 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온라인 카페 깃발 아래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 20년 전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노땅’ 깃발 아래 모인 직장인 등으로 넘실댔다.
“우리가 먼저 변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변할 때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부의 대답을 요구했다. 다시 한번의 기회를 줬으니 변화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촛불도 계속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면 단추를 빼고 바로잡는게 맞다.”
서강석(55)씨는 이명박 정부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옷을 고쳐 입으려면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든지 단추를 빼고 다시 채워야 한다는 건 아이들도 아는 일인데 이명박 정부만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씨는 “이제는 들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주민(18・고등학교3)군은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때문에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들의 목소리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질긴 놈이 이기는 겁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촛불은 될 때까지 타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동원(48)씨는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촛불은 끝까지 타오를 것”이라며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선거에서 국민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고 밝혔다.
아이 셋의 손을 잡고 나온 복대성(41)씨는 “촛불집회가 끝날 기약은 없다.
국민들은 많은 기회를 주었고 이명박 정부는 신임을 잃었지만 국민 대다수가 믿어 보자고 한다면 따르겠다”며 “다만 정부의 태도가 조금도 바뀌지 않으면 임기 내내 시민들이 정부를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김세랑(37)씨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인터넷에 다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로그인을 못 해 못 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며 “정부가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상실하면 우리가 촛불을 들어서라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용화(45)씨는 “앞으로도 우리의 요구 사항을 정부가 어디까지 들어주고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 문제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대운하, 공공사업 민영화 등 모든 문제에 이렇게 촛불을 들어 모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어떻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람들
■ “평화로운 촛불을” 이날 시민들은 평화 집회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서강석씨는 “어렵게 만든 자리다. 폭력 시위를 통해 우리의 순수성과 정당성이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오랜 기간 집회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비폭력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운동권이었다는 이용화(45)씨는 “폭력 시위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시기와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한다”며 “촛불집회는 21세기형이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몸부림을 폭력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동원씨는 “시민들의 과격한 행동을 굳이 폭력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몸부림’이라고 봐야 한다”며 “언로가 막혔을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몸부림을 보지 못하면 그 정부는 외눈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폭력 시위를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처절한 몸부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촛불로 많은 것 배웠다” 이날 촛불집회는 승리의 애드벌룬을 띄우는 퍼포먼스로 끝을 맺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들은 국민이 승리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세랑(37)씨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한 이상 변화를 이루기 전엔 촛불을 내리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국민이 승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동원씨는 “프랑스 국민들도 끊임없는 저항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의 우파 정책을 막아 왔다”며 “대한민국 국민 역시 한마음으로 계속 움직이면 분명히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향후 방향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시민들을 촛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복대성(41)씨는 “국민들은 촛불을 계기로 보수 언론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했다”며 “국민은 변했고 앞으로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윤(31)씨는 “촛불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모든 사람이 조금씩 움직인다면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지난 26일의 촛불집회를 마치고 돌아오기 직전인 27일 새벽, 다행히 한대도 안맞고 잘 버텼는데 결국 방패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시청쪽 인원을 합류시킨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기위해 시청으로 가던중 정찰(?)을 겸해 골목길로 이동했는데 가다가 한무리의 전경들과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앞서 세네명의 여성들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전경들이 이 여성들을 건물벽쪽으로 미는 것이 보이길래 얼른 뛰어가 "왜 인도에서 길가는 사람들을 밀어부치냐?"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빠악~!"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가 날아들었다.
다행히 내 몸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방패는 정확히 내 카메라의 렌즈쪽을 타격했고, 2년간 함께한 내 똑딱이의 렌즈는 경추가 부러져 목이 헤까닥~ 돌아가 버렸다.
전원이 들어가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실질적인 카메라의 기능은 완전정지.
DSLR인 S2Pro가 있기는 하지만 주머니에 넣어다니며 스냅을 찍기에는 역시 똑딱이가 최고인데 안타깝기 짝이없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새로 입양한 녀석이 요놈이다.
파나소닉 DMC-FS3.
기능과 성능따위는 알아볼 필요도 없다.
요즘 나오는 카메라들은 거의 대부분 고만고만한 성능과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소니를 포기하고 이 녀석을 데리고 온 까닭은 전에 사용하던 소니 DSC-W50은 케이스가 아주 약했는데, 이 녀석은 케이스가 단단하고 야무져 보여서다.
한 이틀 가지고 놀아보니 대부분 만족스럽고, 다만 동영상 촬영시 포커스가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 아쉽다.
동영상 촬영에서 포커스 고정이라니... 뭐냐? 넌!



오는 7월 4일,
시청광장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폭거에 항거하는 의미를 담은 대법회가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미사가 봉헌된 오늘,
사제단은 오늘부터 시청광장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하시겠다고 발표했다.
자연스럽게 오는 4일 법회는 천주교회와 불교계가 함께하는 자리가 될 것이고,
만에 하나라도 너희가 이를 탄압할 경우,
전설같은 불무도로 무장한 호국승려들과 성령으로 무장한 성당기사단의 강력한 어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명박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아멘~
아미타불~~
Ps. 오늘은 간만에 두다리 쭉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같네요!

그래, 원래 모든 일은 그렇게 되지.
28일, 시청에 전대협 깃발이 든다는 글을 본뒤 30~40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고 글을 띄웠지.
막상 시청에 2시에 가보니 깃발아래에 있던 인원은 고작 20~30명.
그분들 중에 진짜 시위를 경험해봤던 분들도 많지 않고.
대부분 그동안 울분만 가지고 있다가 80~9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전대협 깃발' 아래에 모인 분들이었다.
목소리가 커서, 집회시위 경험때문에, 아직도 당시의 노래들과 구호 치는 법, 아지 띄우는 법, 대열 진행법을 알고있다는 이유로 대열 리딩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누군들 안그럴 것인가?
이런말이 있었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투사를 만들고,
결국 피를 불러 열사를 만들며,
결국 그 권력은 망하고 만다고.
그동안 거리에서 본 수많은 촛불소녀들은 이미 모두 투사가 되어 있다.
돌을 들거나 폭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입맛을 바꿔서라도 삼양라면을 먹고 부모를 설득해서 조중동을 버리게 만들며 관심이 없던 친구들을 설득해 '조직해 내고'있다.
그게 바로 투사다.
현재 전대협은 유령과도 같다.
더이상 그 실체는 존재하지도 않고,
과거 전대협 간부들의 일부는 완전히 변절하여 기성 정치권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전대협은 투사들의 상징이었고,
해묵은 깃발이 2008년의 시청에 다시 세워진 것은 시대를 역행하려는 이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인 것이다.




시청에서 청계방향으로 진출해 펼친 선전전.
당초 30여명으로 시작한 이 대오는 곧 200여명으로 불어나게 된다.
간만에 실컷 뛰어 봤다.
일단 택이 잡히면 속전속결이 본디 전대협의 투쟁방식이다.



안국동에서의 대치.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대협 깃발에 경찰이 놀랐는지 소화기와 방패를 써서 무작정 진압에 들어왔다.
유모차 아저씨가 소화기를 맞았고 방패에 떠밀린 아저씨 한분이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딛치며 뇌진탕을 일으켜 발작했다.
내가 직접 119를 불러 후송되는 것 까지를 도왔는데,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