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이게 이 겨울의 마지막 함박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간밤에 쉼없이 내린 눈은 새벽 여명 속에서 서서히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두 치가 넘게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뽀드득~ 뽀득" 걸어 다닌다.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새해가 밝고 정월 대보름이 지난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부디 이 눈이 서설(瑞雪)이 되길 바란다.

눈 덮인 삼청동의 풍경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수직에 가까운 축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있는 눈송이떼.

물결(浪: 랑)치는 곳에도 눈이 내려 앉았다.


10년도 훨씬 더 전, 아카데미 프라모델 콘테스트의 심사를 보러갔다가 내 눈에 쏙 들어온 두 고딩 형제들이 있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이 반짝반짝 빛나던 두 형제는 동생은 인형을 만들어 색칠하고, 형은 탱크와 배경을 만들어 작지만 멋진 디오라마를 출품했었다.
당시 이 친구들을 눈여겨 본 나는 곧바로 따로 연락해 잡지필진으로 데뷔시켰고, 그중 동생인 광렬이는 내 첫번째 모형제자가 되기도 했다.
수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형인 성렬군은 군대로, 동생은 호주로 이민을 가서 각각 다른 삶을 살았는데 실로 오랜만에 광렬이가 잠시 귀국을 해서 셋이 함께 만나게 되었다.
연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영락없는 형 노릇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성렬이는 항상 믿음직스럽고, 광렬이는 당시 내 심미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54mm 밀리터리 피겨 원형사로 활동중이다.
셋이서 밤 늦도록 예전 추억과 모형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잊지않고 찾아준 성렬, 광렬 두 형제가 고맙고 반갑다.
그나저나 요놈들이 벌써 서른을 바라본다니... 내가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흑~

의뢰를 받아서 만들고 있는 인물.
액션피겨는 아니고 가슴까지 재현되는 흉상으로 제작된다.
안경을 써야하는데 만들기가 까다로와서 고민중... 오래간만의 개인 의뢰작이라서 잘 만들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