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5. 01 (목) – 오후 4:00 ~ 오후 8:00 (입장마감 오후 7:00) 2014. 05. 02 (금) ~ 05. 04 (일) – 오전 11:00 ~ 오후 8:00 (입장마감 오후 7:00) 2014. 05. 05 (월) – 오전 11:00 ~ 오후 6:00 (입장마감 오후 5:00)
현장 판매가 성인 (19세 이상) 12,000원 학생 (7 – 18세) 10,000원
※ 예매시 10% 할인 ※ 20인 이상 단체 20% 할인 (1544-6399 전화 예매시)
My original shipping schedule is already gone, i really apology about that.
Now i suffering from a pain of neck(disc) problem.
In last one month, really bad condition on my body and i can't working my job.
Of course i am undergoing neck treatment, and getting batter then really bad.
I am working everyday for my customer, but my working speed is slowdown then my original condition.
So shipping schedule is still delayed, but i'll be absolutely finished my job for everyone and me.
Van Gogh will be shipped at mid August, if not i'll refund who want.
Yi Soon-Shin also little delayed, will be shipped on early~mid September.
Thank you very much and i am sorry about my bad health condition.
Best Regards,
Serang.
안녕하세요? 김세랑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매우 심한 목디스크 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었고 작업도 열심히했는데, 지난 수년간~올해 초반까지 너무 열심히 달려온 탓인지 최근 몇달간 목디스크가 재발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다보니 원래 제 작업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애초에 약속드린 배송시기가 좀 지연될 것 같습니다.
이미 작년 작품이지만 수차례의 전시와 작업실 이전, 이후 개인적인 제 사정등으로 어느덧 일년 가까이 되어가는 반 고흐의 배송지연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요 몇주간 컨디션을 조절한 덕분에 다시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므로 곧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 고흐 피겨는 8월 중반까지는 모두 배송이 완료될 예정이며, 만일 이때까지도 제가 마무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원하시는 경우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이순신 피겨는 원래 배송예정이었던 7월 말에서 8월말~9월 초중순으로 약 한달 가량 배송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작품을 구매해 주신 분들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들로 배송이 늦어진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오랜 기다림에 보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통의 연속이다.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늪에서 허우적대고 허망한 세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워도 이놈의 고깃덩이는 자꾸만 내 발길을 잡아 끈다. 2006년 이후 또한번 내 목을 조르고 있는 이 굴레와 껍데기를 벗어 던지기위해 몸부림 치다가 껍데기 중의 하나를 날려버렸다. 거울보며 바리깡으로 벅벅 밀고 면도기로 싸악~싹 밀어버리고 며칠... 완전삭발을 한 것은 군입대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두상도 못생겼고 머리를 밀면 내 인상이 매우 살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남들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아웃오브안중.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바닥까지 빠져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젠 잘 알기에 오늘도 난 심신을 모두 망나니의 칼춤앞에 내던지고 있다.
명량, 333척의 적함들과 홀로 직접 맞서 싸우던 함대 기함인 천자1호좌선이 초요기를 올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안위를 부릅니다.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판옥선 장대에서 적선에 편전을 날려대던 장군께서 소리칩니다.
"안위 이놈~! 도망치면 네가 살 것 같으냐! 내 당장 너를 군법에 따라 목을 벨 것이나 싸움이 급하니 먼저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내손에 죽으랴 아니면 적과 싸우다 죽을테냐!"
혼비백산한 안위는 333척의 적선을 향해 돌격합니다.
충무공은 분명 임금과 백성, 나라를 사랑했지만 결코 머리로만 싸우거나 마냥 인자한 덕장, 지장만은 아니었습니다. 원균과 진린의 뻘짓에 밤잠을 못이루고 고약하다, 망측하다, 괴이하다, 이불을 움켜쥐며 이를 박박 갈 정도로 화도 내셨습니다. 억울함과 분통함에 진지도 못드십니다.
당연합니다. 남은 목숨 내걸고 싸우고 있는 판국에 자기 배에서 기생질하고 후방에서 조수에 떠내려온 왜군 수급이나 뎅강뎅강 베어 챙기는 작자들에게 화가 안나면 이상하지요.
난중일기에서 충무공이 이런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은 결코 매력적이지 못했을겁니다. 나와 같은 사람,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조선의 늙은 군인'이었던 이순신이 난세에서 나라를 구해내는 엄청난 일을 만들어 냅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대단합니까?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부끄러운 아들이지만 전장에서는 분기탱천해 야차가 되어 버리는 인물. 크건 작건 잘못앞에서는 경상우수사 원균도 바지 까서 곤장 쳐버리고 내 수족같은 병사의 목도 뎅강 쳐 날려버리는 단호함. 통사께서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70대 노인쯤으로 볼지 모르지만 이분은 수염의 상태와 색, 신분과 피부를 고려할때 아마 40대 중반 정도일 것이다.
현대인들보다 야외노출이 많고 고강도의 노동을 감내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현대인들보다 훨씬 어두운 피부에 곰보자국, 상대적으로 거친 피부, 자외선 노출에 의한 잔주름이 많았다.
여기에 이순신 장군의 경우는 무과에 급제한 30대에 북방에서 전투를 치루고 해풍속에서 수군을 돌봤으며 병을 앓고 있었고 그 몸으로 고신(고문)까지 당한뒤 초죽음 상태에서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다.
도대체 이순신의 얼굴이 어떻했을꺼라 생각하는가?
장군께서 돌아가신 것이 우리나이로 54세, 아마 명량, 노량해전 당시의 장군은 머리와 수염이 다 세고 피골은 상접해 마치 귀신과도 같은 모습의, 아마 족히 70대(오늘날의 80대) 상노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조금의 생각과 노력도 안하고 이순신 장군 하면 바로 김명민을 떠올리는 현대인들의 이 저질스러운 역사와 과거에 대한 시각이 답답해서 푸념아닌 푸념을 긁적인다.
충무공의 표준영정은 이봉상 장군의 초상을 참고해 다시 그려져야 한다. 편집증세를 보였다해도 과언이 아닌 충무공에 대한 선조의 배척정책때문인지는 몰라도 임란중 자잘한 공을 세운 장수들 조차도 공식초상들이 그려진 것에 반해 충무공은 당대의 초상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초상들은 이미 예전에도 포스팅했듯이 모두 현대에 완벽한 상상에 의해 그려진 가공의 초상들 뿐이다.
이런 가운데 한줄기 빛과도 같은 자료는 바로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상 장군의 초상이다.
충무공과 같은 핏줄, 충무공의 용모에 대한 기록과 거의 일치하는 부인할 수 없는 용모(마른듯한 체형, 뒤집어진 입술, 풍성하지 않은 수염등), 거기에 충무공과 거의 같은 길을 걸어서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한 이봉상 장군의 초상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충무공 용모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여기에 더해 이봉상 장군 초상은 수많은 조선시대 초상화들중에서도 걸작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비록 상상력을 동원해야하는 부분이 추가된다 할지라도 민족의 성웅인 충무공의 영정 조차도 근본불명으로 남는다면 후세에 무엇으로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
제 충무공 작품에 가져주신 관심과 문의, 주문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을 만들고 발표할때까지만 해도 과연 이걸 누가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는데, 막상 예약주문을 받기 시작하니 제 당초 예상보다 주문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어서 곧 특별가 한정 예약은 마감될 것 같습니다. 주문을 고려중인 분들은 현재 가격으로 주문하시려면 조금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충무공 제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중의 하나인 용봉문 투구입니다.
현존하는 투구들의 대부분은 조선후기의 것들이 많은데, 특히 구한말에 외국 귀빈들에게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았던 탓에 많은 수가 외국에 남아있습니다.
실제 임진왜란 당시의 투구는 상대적으로 후기의 것 보다는 그 장식들의 화려함이 조금 덜합니다만, 충무공의 투구가 유물로 전해지지 않는데다가 애초 제가 이 충무공 피겨를 제작하게 된 이유중 하나인 외국에 충무공을 알리겠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었기에 투구는 화려한 후기형 투구로 제작했습니다.
화려한 사무라이 갑옷에 익숙한 서양사람들에게 확실히 충무공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포인트이니까요.
남아있는 거의 모든 투구 유물들을 비교분석하고 검토해서 나름대로 가장 아름다운 원수용 용봉문 투구를 재현해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왕실용 갑주와 두석린갑도 재현해보고 싶네요.
정교하고 섬세한 장식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투구인 조선시대 용봉문 투구는 충무공 제작을 마음먹었을때 가장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이미 오래전 수차례 제 손으로 직접 조형을 해서 여러차례 만든바 있지만, 이번만큼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실물수준의 재현을 목표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부분과는 달리 3D모델링과 컴퓨터를 이용한 덩어리 잡기와 섬세한 디자인 작업으로 디테일들을 재현해 냈습니다.
물론 이렇게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을 하더라도 자료조사와 유물의 분석, 설계, 묘사와 표현의 정도등은 모두 제 노력과 해석, 감각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작업싫을 옮기게 되어 지난 몇주간 정신이 없다가 비로소 한숨 돌리게 되어 제작발표회 이후 업로드 예정이었던 충무공 피겨의 사진촬영과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공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원칙은 철저히 기록과 충무공의 난중일기,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5대 후손인 이봉상 장군의 초상등 다수의 참고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되 지난 20여년간 개인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전통군사사를 연구했던 제 개인적인 해석을 종합해 담아 봤습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지나치게 자애로운 문신같은 이미지의 충무공, 광화문 동상의 불분명한 고증과 관우같은 이미지, 드라마나 영화등에서 그려진 미화된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며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넘어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준 '평범한 조선의 늙은 군인'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